by jslky » 2004-11-26 Fri 20:46pm
Sham 69 - Hey Little Rich Boy
Sex Pistols가 펑크에 불을 붙였다면 그 불에 기름을 뿌린건 Sham 69였다.
오이 펑크의 역사상 가장 위에 있는 밴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펑크 듣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들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안타까워서 글을 남겨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은 스스로 찾아들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 사람들이 능동적이 됐으면 좋겠다.
답답허다.
Sham 69는 76년 런던에서 결성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노동자들의 대변인이었고, 밴드의 보컬 Jimmy Pursey는 그들의 영웅이었다.
Sham 69는 펑크의 사운드를 한층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펑크 씬을 만들어냈다.
바로 그것이 오이 펑크 씬이었다.
이들의 음악과 공연을 보고 영향을 받은 스킨헤드들은 펑크 씬에 몸을 던졌다.
(스킨헤드 : 노동자 계층으로 씻을 물조차 없어서 머리에 이가 들끓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은 모두 머리를 밀었고, 그것이 전통같이 되었다.)
70년대 중후반 사실상 펑크가 노동자들의 음악에서 유행을 타고 주류로 올라오면서 그 의미는 많이 퇴색되어 버렸다.
청소년들은 노동자도 뭣도 아니면서 펑크에 휩쓸려서 각종 비행을 저질렀고,
모두 피스톨스와 같은 옷을 입고 다니면서 그것이 펑크룩으로 정착되어버렸다.
(펑크 패션은 원래 그렇게 딱 틀에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Sham 69에 의해서 펑크는 노동자들의 가요가 되었다.
하루 노동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스킨헤드들의 희망 없는 인생에,
오이 펑크는 축구와 함께 이들의 몇 안되는 인생의 낙 중 하나였다.
( 훌리건 중에 스킨헤드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_-; )
그러나 Sham 69와 오이 펑크는 스킨헤드들의 분열로 무너지고 만다.
영국의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영국은 당시 IMF를 맞았다.) 노동자들은 살기가 더욱 더 힘들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이에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스킨헤드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바로 나찌주의/백인우월주의 스킨헤드들이다.
전부터 외국인 노동자들과도 친하게 지냈던 올드스쿨 스킨헤드들은,
나찌/백인우월 스킨헤드들이 스킨헤드들 전체의 이미지로 굳어버리는 것을 염려했고,
결국 이 두 세력은 갈라져서 오이 펑크 공연마다 만나면 패싸움을 벌였다.
그들은 대부분 노동자들이라 지적 수준이 바닥을 기었기 때문에,
그들의 폭력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오이 펑크계가 혼란스러울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Sham 69의 공연에서 나찌/백인우월 스킨헤드들과 올드스쿨 스킨헤드들이 패싸움을 벌이게 되고,
이러한 사태에 가슴이 찢어진 Sham 69의 보컬 Jimmy Pursey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오이 펑크는 분열되면서 사실상 80년대 초반 UK 차트에서 밀려나고 무너졌다.
그러나 그것이 오이 펑크의 끝은 아니었다.
비록 마이너로 밀려나긴 했지만. ..
마이너로 밀려난 덕분에 펑크는 더욱 강해질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조차도 그들의 추종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까.
Sham69는 위대했다.
아니,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