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slky » 2004-08-16 Mon 14:03pm
이들의 취향을 아주 잘 보여주는 공연 홍보물. ..
Himsa.
힘사라는 밴드명은 간디가 주장한 Ahimsa 라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비폭력 저항운동 뭐 그런거. ..
여기에서 A를 빼버리면 반대의 뜻이 되어버리는데, Himsa는 폭력, 해를 가하다. 그런 뜻이다.
힘사는 멜로딕데쓰메탈에 쓰래쉬, 하드코어를 융합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램 오브 갓의 소개에서 이야기했던 메탈코어의 세가지 유형 중 다른 하나이다.
90년대 말 시애틀에서 결성된 힘사는 당시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망주라고 날리던 멤버들에 의해서 결성되었다.
유망주 멤버들로 결성된 덕분에 이들은 쉽게 Revelation Records를 통해 데뷔앨범을 발매하였다.
이 데뷔앨범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실험적인 음악을 들려줬는데,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내기는 했으나 워낙 실험적인 음악이어서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다.
여기까지 보면 그저 그런 밴드로 힘사가 주저앉았으리라고 예상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열심히 투어를 돌았다.
밴드내의 문제로 수많은 멤버들이 교체되어도 그들은 끝없이 투어를 계속해나갔다.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진 밴드 멤버들이었기에, 멤버들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음악들이 힘사에게 양분이 되었다.
그 후, 힘사는 아시아 투어를 결심하고 자신들만의 자비로 아시아 투어를 돌기 시작한다.
중국,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을 돌며,
그 나라들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직접 경험하며 자신들을 성장시켜 나간다.
(한국에서는 GMC 레코드의 삼청교육대나 바슬린 같은 밴드들과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전혀 모르는 아시아 사람들이 (숫자는 적었으나) 자신들에게 열광하는 것을 보며 감동했다.
그러나 이 투어까지만 해도 힘사는 매우 처참해 보였다. 자비로 도는 투어였으니 오죽했으랴.
그 날 공연을 하고나면 다음날 먹을 음식과 잠자리를 걱정해야 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 투어는 힘사의 팀웍을 다지는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들의 뼈아픈 고통은 헛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Yeah.!
이후 이들은 미국으로 돌아가 다시 투어를 하기 시작하며 메탈코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는 음악을 하기 시작한다.
하드코어와 쓰래쉬 메탈, 유럽의 멜로딕데쓰메탈에 영향받은 그런 음악을.
2001년 하반기 이들은 EP를 발매함으로서 그 전의 실험성 하드코어와는 차별된 그들만의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2002년에는 헬페스트에 참여하고, Bleeding Thriugh, AFI와 같이 투어를 돌기도 한다.
이들은 신보 레코딩을 마친뒤, New England Metal Fistival에 참여한다.
Meshuggah, Killswitch Engage, Haste, Shadows Fall, Strappong Young Lad 등 쟁쟁한 밴드들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라이브를 펼친다.
후에 이들은 Prosthetic Records를 통해 신보 'Courting Tragedy And Disater'를 발매하게 된다.
이 앨범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운드에 놀라게 되는데,
멜로딕 데쓰메탈 밴드들의 곡 진행구성과, 쓰래쉬 메탈 밴드들의 육중한 기타리프,
80년대 파워메탈 밴드들에게나 들을수 있는 기타 솔로까지 들려주는, 지금까지는 듣지 못했던 그러한 음악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던 밴드가 뼈를 깎는 고통으로 진화하여 이들은 지금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한국과 라이센스 계약을 할때, 첫번째로 내걸은 조건이 한국에서 라이브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상당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에도, 이들은 팬들과 공감하며 연주하는 것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힘사는 음악으로 보나 그 동안 이들이 걸어온 길로 보나 너무나 훌륭한 밴드임을 부정할수 없다.
근데 씨발새끼들 홈페이지 가보니까 사람 터져죽은 사진, 여자랑 빠굴 뜨는 사진 이딴거나 올려놔서 밴드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짜증난다. ..
Himsa - A Girl In G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