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slky » 2004-10-23 Sat 16:31pm
- 커버와 부클릿
커버에는 검은 손톱을 한 늘씬한 많은 손들이 꼬마애를 더듬고 있습니다.
꼬마애는 그 속에서 괴로움에 소리를 지르는듯 합니다.
커버부터 심상치 않은 Porno Virus 입니다.
부클릿은 가사는 기름종이로 되어있고 토끼장 속에 갇힌 토끼와 멤버들 사진 등 재미있는 이미지가 있네요.
이 정도면 부클릿은 만족할만 하군요.
앨범의 성향을 아주 잘 나타내는 커버입니다.
- Rainy Sun.?
90년대 우리나라 언더 문화는 대학가의 클럽들을 중심으로 꽤나 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나 언더 -> 메이저 로 가는 시스템이 지금이랑 다를것없이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음반을 내는 메이저 레코드사들은 더 이상 도전을 하려 들지 않았고, 음악성이 아닌 상품성에만 온 신경을 쏟았고, 모두 안전빵만을 추구했지요.
메이저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뮤지션들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험정신이 결여된 음악판은 도저히 발전을 할수가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덕분에 한국의 오버그라운드에서는 댄스와 발라드만이 난무했고, 마이너에 있을 이유가 없는 음악들조차 모조리 마이너에 몰려있었습니다.
(지금은 흑인음악이 치고 올라오긴 했지만 음악적 다양성에 있어서 턱없이 모자르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린 밴드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레이니썬 입니다.
- 음악
레이니썬의 데뷔앨범은 분명히 메탈 성향이 있는 락이었지만, 이들을 하나의 틀에 넣기란 굉장히 힘듭니다.
이들은 그만큼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이 앨범에서 보여줬지요.
이 앨범을 뒤덮고 있는 세 이미지는 '슬픔'과 '공포' 그리고 '분노' 입니다.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이 앨범을 듣고 나면 한편의 호러소설이나 호러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음산하고, 때로는 서글프고, 때로는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차가운 어쿠스틱 기타 소리야말로 호러블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듯.
또 정차식의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와 가성은 레이니썬의 기괴함을 더합니다.
첫 트랙부터 듣는 사람을 소름 돋게 하는 그의 가성의 위력은 굉장합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독특한 기타 리프들도 상당히 재미있네요.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두 트랙 'Pig Cross' 와 'North'를 추천하고 싶군요.
그 외에도 이들의 음산함을 제대로 느낄수 있는 'Porno Virus'도 주목할만한 트랙입니다.
재발매판에 들어간 보너스트랙들도 추천할 만합니다.
이 앨범의 음산함과 기괴함은 덜하지만 상당히 신나는 'Under My Skin',
파리넬리를 떠오르게 하는 정차식의 보컬이 돋보이는 레이니썬식 발라드인 '꿈에'.
두 트랙 모두 아주 인상적입니다.
좀 어두운 성향의 음악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좋아하실수 있는 음반입니다.
조용한걸 즐기시던, 시끄러운걸 즐기시던 말이지요.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독창적으로 자신들만의 음악 세계를 가지고 있던 밴드가 있다는게 정말 놀라울 따름이네요.
그것도 이런 어둡고 공포스런 분위기라니 더더욱.
- Porno Virus 그 후.
레이니썬은 그 후 멤버 교체를 겪는등 꽤나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레이니썬이란 이름으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음악 성향이 1.5집 유감에서부터 좀 틀어지더니,
2집에서는 락에서 째즈나 탱고 쪽으로 옮겨갔지만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음악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못하면 욕이라도 해줄려고 했었는데, 그럴수도 없네요. 허허허.
이런 멋진 밴드가 한국에 있다는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많은 앨범들을 남겨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