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임이 말하는 '고결함'>
게임 초반부에 동부인들이 말하는 '서부금역에 사는 사람들과 관련된 소문들'은 정말 무시무시하다. 게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부인들은 사람의 생피를 마신다'라는 대사도 들을 수 있다. 서부의 부족 테낙스는 호전적이고 의사결정이 극단적인 부족이다. 다툼은 결투를 해서 한쪽을 죽여버리는 것으로 해결한다.
에일로이는 테낙스 부족 사람들을 만나면서 테낙스의 호전적이고 극단적인 모습 너머에는 고결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게임 설정상 테낙스 부족은 기록물을 남기는 문화가 없어서 태어나면서부터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있었던 일이나 기억할만한 순간을 자기 몸에 문신? 그림? 같은 걸로 그려서 간직한다. 그래서 게임을 하다 보면 조지 밀러 스타일이나 비주얼록계가 연상되는 머리 모양이나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있는 NPC들을 계속 만날 수 있다...
나중에 에일로이의 동료가 되는 테낙스인 코탈로는 사망한 동료의 이야기를 자기 팔뚝에 그림으로 새겨서 영원히 간직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이 게임이 테낙스 부족을 통해 보여주는 고결함이란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했을 생각, 인연, 사람, 기억, 역사 등등 그 모든것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그편에 서는 것을 고결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극복한 나의 모습이다>
작중 코탈로는 한쪽 팔을 잃고 불구가 되는데 나중에 에일로이의 도움으로 의수를 만들어 두 팔로 싸울 수 있게 된다. 코탈로는 전투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의수를 분리해서 따로 보관하는데, 에일로이가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코탈로는 '(의수를 장착하지 않은)이 모습이 내가 극복해낸 온전한 내 모습이며 나는 내가 극복해낸 이 모습에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대답한다. 정말 테낙스 부족의 위대한 전사가 쓸만한 말글이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거나, 살면서 갑자기 남들과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잠깐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일렌스를 취급하는 방법>
사일렌스는 야만인 출신이지만 아는게 많고 꾀를 잘 부리며 과학적 지식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에일로이는 게임 초반부터 사일렌스에게 차갑게 대한다. 전작에서부터 사일렌스에게 계속 속아서 화가 난 상태이기도 했지만, 사일렌스가 언제나 다수의 사람이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얘길 태연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 에일로이도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뭐라 하기 어려운 처지인데, 왜냐하면 게임을 해보면 알겠지만 에일로이도 사람 많이 죽이고 다니기 때문이다.
게임 초반부터 에일로이는 사일렌스의 아이디어를 하나의 의견이나 선택지로 취급조차 해주지 않으며 사일렌스에게 아예 꺼지라는 말까지 한다. 나중에 사일렌스의 계획을 조져놓고 사일렌스에게 가장 소중했던걸 박살을 내놓고 나서야 자신의 계획 일부로 사일렌스를 참여시킨다.
이걸 보면서 솔직히 '에일로이 성격 나쁘네'하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공론장에 들고 들어올수 있는 정치적 입장이나 의견의 최저수준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공론장에서는 적어도 사람 같잖은 말글은 의견으로 취급해선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종이 문서에 써있는 숫자가 '현실에 살아서 존재하는 사람의 수'라는걸 가끔 잊곤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글 같은 것들 말이다.
<타인의 믿음이나 신앙을 굳이 거스르지 않는다>
서부지역의 우타루 부족은 소 형상을 한 기계를 숭배한다. 소(기계)가 돌아다니면서 씨앗을 옮기고 토양을 좋아지게 해 농사를 돕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 형상을 한 기계'는 설정상 어떤 이유(게임 해보면 안다)로 고대인들이 남긴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테라포밍 장치이다. 지구의 환경을 회복하고 식물의 종자를 옮기는 기능을 반복해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임에서 에일로이가 우타루의 마을을 방문한 시점에는 이 소(기계)가 고장이 나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었고, 기후변화와 지구 생태계 이상까지 겹쳐서 우타루 부족의 식량 사정이 매우 나빠져 있었다. 우타루 부족은 자신들의 농사를 돕던 수호신이 노쇠하여 병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게 된 소(기계)에게 각종 주술적인 장식과 그림을 그려놓고 소(기계)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에일로이에게 그 소는 그저 기계에 불과해 수리하면 되는 상태였지만 에일로이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지금부터 이 수호신을 치료할 테니 너무 놀라지 않길 바란다.' 며 우타루 부족에게 설명하고는 소의 부품 일부를 수리해 소가 일어날 수 있게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믿음이나 신앙은 그 나름의 소통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적이면서도 잘 연마된 이성과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타인의 소통법을 굳이 논파하려 들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이해는 못 해도 공감은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고, 인류의 종교도 과거에는 정치집단(정당), 노조, 병원, 보육원 등 여러 기능을 해왔으니깐. 평소에 하고싶은말이 '그딴거 왜 좋아하냐'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아예 안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에서 온 얀데레>
틸다는 과거 엘리자베스 소벡 박사의 친구였으며, 이 틸다(할머니?)가 하는 말글을 잘 보면 틸다는 엘리자베스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품었음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엘리자베스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지만... 짝사랑은 힘들지...
틸다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엘리자베스의 분신이자 가장 뛰어난 카피본이라 할 수 있는 에일로이를 만나서 구해주는데, 하필 에일로이를 옮긴 장소가 과거에 자신이 소유했던 미술품을 보관해놓은 창고 같은 시설이었다. 정신을 잃었다 미술품 창고에서 눈을 뜬 에일로이는 창고 밖으로 나오면서 무선을 통해 틸다와 대화를 하게 된다.
틸다의 권유에 따라 창고에 보관된 미술품들을 하나씩 보면서 나오는 이 장면에서 틸다가 에일로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녀는 아마도 에일로이를 보며 이젠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짝사랑 상대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대단히 기뻤을 것이고 그래서 우주인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 같다.
틸다의 이런 태도는 최종장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짝사랑 상대(에일로이=엘리자베스)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그 결말이... (말잇못)
여러 가지 생각했던 것 중 굵직한 것만 써봤다. 이 게임을 가지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운 표현물' 논란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번 쭉 돌아보니 주로 캐릭터의 외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 좀 아쉬웠다.
인터넷상에서 그런 종류의 논쟁은 사회적 '무균실'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잘못을 똑같이 반복하려는 흐름으로 가버릴 때가 많다. 그리고 이 게임 정도면 그런 주제에서 능청스럽게도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PC 하다고 하기에는 여러 문제도 있는 이 게임이 이 정도로 능청스럽지 않았다면 이렇게 재미있지 않았을지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