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r.KARATE » 2004-05-26 Wed 16:39pm
18세기 계몽주의의 탄생 이후로 인류는 세계를 자신의 의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행동해왔다. 인류는 세계를 이용하기 위해, 세계의 많은 것들을 카테고리화 했고 숫자화 했다. 서로 다른것 들을 같은것 으로 묶고, 같은것이 되기 거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폭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로 이어지게 되었고, 사람들은 계속 이어져온 계몽주의적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게 되었다. 즉, 그들이 합리라고 불러왔던 것들이 도리어 비합리를 생산해 왔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합리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 했다. 과학과 합리가 덮어버린 '다른 것' 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예술이 그것에 대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I - IV - V - I 등으로 종결되는 상투적인 끝맺음과 감7도와 같은 난감함의 뻔한 표현들 까지도 모두 세계에 대한 거짓이라고 말한다. 주술적 전통에서 이어진 예술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미메시스가 세계를 직시할 수 있었을 것이고, 직시 했으면서도 세계가 합리와 이성으로 가득 차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거짓말 이라는 이야기다.
아도르노의 예술관에 따르면 그는 필연적으로 모더니즘 예술가들의 작품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게된다. 무조음악이나 나아가서는 존 케이지와 같은 급진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 그는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변증법적 세계관 속에서 '합' 을 위해 '반' 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는 아방가르드 예술의 이러한 '반' 의 작업이 결과적으로는 세계와 인류의 '합', 그러니까 일종의 화해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한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현대의 예술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이들을 꼽으라면 자신있게 Radiohead 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노골적으로 내세우는 반-고전적 테마들은 그들의 작품 안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잘 조화되어 청자의 귀를 자극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한없는 난해함이 오히려 그들을 대중적인 음악가로 만드는 데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국문과 교수중에 조창환이라는 시인이 있는데, 그는 랭보와 같은 허무주의적이고 우울한 감성의 시를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는 학생들이 그런 경향의 습작을 써오거나 하면 당장에 호통을 친다. 국문과 후배 중 누군가가 "형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라고 물었을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는게 좆같잖아. 좆같은걸 좆같다고 말하는게 뭐가 이상해? 조창환이는 세상이 그렇게 즐거워 보인대?" 나는, Radiohead 도 분명히 이런 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음악의 불안하고 우울한 정서와 형식적인 파격이 이러한 인식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그러면 Weezer 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은 형식적으로 전혀 아방가르드 하지 않다. 보통 써먹는 상투적인 진행에 어떤 부분에선 서유럽의 민요를 떠올리게끔 만드는 아주 고전적인 테마들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이들은 뭐 그저 그런 밴드군.' 이라는 오해를 가지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을 자세히 들어본다면, 그들이 '뭔가 있는 밴드' 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수 있다. 이상한 가사.. 이상한 뮤직 비디오.. 이상한 홈페이지.. 이상한 기타 솔로..
이들이 하는 '고전적인' 음악은 전부 이상하고 우스운 것으로 다시 재생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의 음악과 행동은 약한 의미의 '패러디' 가 되어 버린다. 그것이 패러디라는 사실은 그들 자신이 하고있는 음악을 계속해서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냉소적이다. 형식적 파괴를 능동적으로 밀고 나가는 Radiohead 보다도 자신들의 모든것을 냉소하는 이들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그래서 더 암울하다.
2002년에 발매된 Maladroit 에서 시도되는 80년대로의 회귀 역시 지금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부정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한 것은, 아직 시작에 불과한 이런 변화가 80년대의 방법을 차용해서 그것을 다시 우스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Weezer 특유의 방식으로 잘 소화되고 있고 그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Weezer 는 잘 하고 있다.
이상, (사실은) Weezer 에 대한 과도하게 이성적이고 학구적인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