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walrus » 2004-07-05 Mon 12:33pm
이 작품은 다카하시 루미코가 어째서 대단한가에 대한 어떤 답변이 되는 작품이다.
그리고 우선 이 만화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알고 보아야 하며, 한국판으로 보는 것은 절대로 말리고 싶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시트콤식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면서, 각 에피소드들은
일상적인 모습->소재의 등장->사건 심화->갈때까지 가서->갑자기 끝난다
이런 구성을 띄고 있다. 이런 전개에서 벗어나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다.
사실 이런 식의 전개는 흔하다. 그런데 어째서 유독 이 작품만 그토록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다카하시 루미코를 일약 국민작가으로 끌어올린 걸까?
첫째로 오롯히 일본인을 위한 코믹 만화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소재의 상당수가 일본의 전래동화나 민담에서 끌어온 내용이다. 그런데 이를 그냥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감각으로 코믹하게 꼬아 놨다. 자칫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기 쉬운 것들을 1980년대의 감성과 유행에 적절히 들어맞을 수 있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은 특히 일본인들에게 주효할 수 밖에 없다.(한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아 그다지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또한 중간중간 일본어의 말장난, 언어 유희가 빛을 발하는데, 타이밍이 조금만 차이나더라도 썰렁해지기 쉬운 이런 개그를 유효한 타이밍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이다. (그래서 한국어판을 권할 수 없는 것이다. 번역이 너무 엉망이다.)
둘째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구성상 지루해지기 쉬운 것들을 작가는 끊임없는 참신한 소재로서 커버하고 있다. 그것도 어느정도까지 때우는 수준이 아니라 34권씩이나 끊임없이 끌어갔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소재가 꽤나 컬트적인데, 이런 컬트적 요소 때문에 연재 당시 청소년들보다도 대학생층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렇게 적절히 매니악한 요소를 첨가함으로서 폭넓은 계층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동인지 활동 시절의 영향인 듯 싶다. 또 당시의 오타쿠들에게도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셋째 선명한 캐릭터의 창조를 들 수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각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34권 내내 거의 변하지 않는데, 이렇게 강한 캐릭터들은 에피소드들이 더욱 부각되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이후 작품인 란마1/2의 주인공들은 훨씬 입체적이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변하는데, 이것이 두 작품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컷 분배의 탁월함이 돋보인다. 아다치 미츠루가 굉장히 감성을 자극하는...(표현하기가 그렇지만)그만의 컷 분배의 입지를 마련했다면 다카하시 루미코는 코믹컷의 달인이다. 정신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내용들을 겨우 스무 쪽도 안 되는 분량에 전부 다 담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떨어지는 편인 그림 실력도 이 컷의 적절한 활용으로 전부 커버하고 있다.
다섯째로 진짜 끝까지 막나가는 것이다. 짧은 분량 속에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전부 제각각 자기 할 말은 다 하고 정말 제목이 딱 들어맞게 시끄럽고 정신없는데다 사회 자체가 붕괴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대소동이 벌어지는 데(란마에서도 이런 식이지만 본작에 비해선 상당히 순화되어 있다.), 이런 '갈데까지 가는'식의 전개는 사실 열렬한 지지층이 있는 만큼 싫어하는 이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일본에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작품을 볼 때 마다 드는 생각은 '그때가 좋았는데'하는 생각이다. 지금의 다카하시 루미코는 나이 탓인지는 모르나 란마 이후로 내공이 떨어져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실 안타깝다. 근작 이누야샤의 인기도 사실 그녀의 특유의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인기에 의한 것으로 그녀만의 특이성을 느끼게 했던 옛날 작품들과는 달리 평이해지고 만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작품이므로 만점은...)
★★★(란마보다는 굉장히 일본인 취향이기 때문에 한국인들 상당수는 이정도로 느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