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in4lest » 2004-06-09 Wed 14:28pm
2004년.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인간의 욕심대로 뚝 잘러서 2003년과 2004년을 만들었다. 물론 년이란 개념을 만든 건 현재의 시간흐름을 잡을려는 욕심은 아니고 단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갔는지 알기 위한 소박한 바램에서 비롯되었지만,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변하는 순간 느껴지는 기묘한 감정들은 단순히 달력이 넘어간다는 것을 넘어서 어느덧 나의 나이가 이만큼 되었구나는 생각이 나를 나긋히 눌려온다.
2004년이란 숫자의 위력앞에서 누구나 돌아보게 되는 생각이 있다. 시간을 허무하게 흘러보낸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도 해보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이정도 나이를 먹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서일것이다. 옛말에 나이에 맞게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것이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 어른의 생각과 행동을 하면 불행하고 어른이 되어서 어린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한다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변사람들한테 남기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이에 맞는 성장을 해가야한다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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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느낀다.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지 이루어지는 세계. 그 속에서 나는 세계의 중심이다. 그러나 조금 자라다보면 집에서는 부모님,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진리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다보면 그들의 말도 다분히 옳지 않는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흔히 겪는 청소년기의 반항심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셈이다. '사실 세계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말하는대로 돌아가지 않더라고!' 중심을 잃어버린 세상. 그곳에서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은 그 책임을 주변사람에게 돌리면서 끊임없이 나를 위로한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네' 탓이야. 바로 너, 너...
그 폭풍같던 시절이 지나고 난 뒤 많은 경험을 통해 사실 세상은 그렇게 중심없이 돌아가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 체념하게 된다. 세상이란 일정한 흐름과 나아가는 방향이 있다. 그러나 '나와는 관계없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봤자 세상은 이미 흘러가고 있고 그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무관심해지자! 이때부터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면서 특유의 이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아프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되지.
이게 일반적으로 말하는 어른이 되는 길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까지는 세월의 힘으로 쉽게 도달하는 단계이다. 하지만 여기에만 머물지 않게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의 흐름과 방향에 나의 조그만 생각과 행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순수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말이다. 별 것 아닌 마음씀씀이로 내 주변 사람이 변하고 크지 않는 행동으로 남을 기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나쁜 일이 벌어져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결국에는 좋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도 미워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나로 인해, 혹은 우리로 인해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믿는다. 왜? 그렇게 순리대로 흐를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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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들어감에 따라 이미 나는 '쉬운 어른'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쌓여질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 '어려운 어른'이 되기는 무척 힘든 일이다. 나이를 하나하나 먹어갈수록 초초해지는 건 능력, 지위, 명예 등 많은 것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쉬운 어른'에 집착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능력, 지위, 명예이기 때문이다. 그 둘의 갈등 속에서 한발걸음도 나아가기 힘든 것이 오늘의 나인 것 같다.
오래전부터 '어려운 어른'의 아름다움을 동경해왔다. 어릴 땐 그때쯤 되면 될 수 있을거야란 생각에 가득찼지만, 그건 매우 어려운 싸움 속에서 견뎌낼 수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란 걸 차츰 알아갈수록 나이를 하나하나씩 먹는게 괴로워진다. 해낼 수 있을까란 질문앞에서 점점 자신 없어지는 초라한 나를 발견하는 게 괴로워진다. 그래서 2004년은 ... 2003년도 그랬고 2005년도 그럴거지만... 괴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