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leepnot » 2004-05-25 Tue 2:17am
옛날, 먼 옛날 옛적.
문방구 앞에는 일명 '뽑기'라 불리던 정체불명의 돈 처먹는 귀신이 있었다.
드래곤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시절, 당연히 뽑기에도 드래곤볼의 열풍은 휘몰아쳤다.
대부분 중국제 싸구려 고무 장난감이라 질은 병신같았지만 그래도 손오공이나 베지타같은 주연급의 인기는 절정을 달렸으며 그만큼 뽑기도 개같이 힘들었다.
당시 10살의 정씨(대역가명), 유행에 뒤처지면 도태되는 남자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도 따봉의 전투력까지 외울 정도의 매니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했던 그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문방구 앞이 떠들썩하니 의문을 가지는것은 당연하겠다.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하여 문방구 앞으로 접근했다.
그곳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무려 손오공이었던 것이다..
당시 손오공을 뽑는다는 건 부산 사하구 당리동 D공고에서 서울대 합격자가 나오는것과 비견할 정도였으니, 천운을 타고난 자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감히 손오공을 넘보지 못했다.
그 손오공에 정씨가 자극받은것은 역시 필연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누가 정씨를 막을 수 있었겠는가...
무릇, 초등학교 2학년이라 함은 식욕이 왕성할 시기이다.
정씨도 쉬는시간마다 학교앞 슈퍼에 들르지 않으면 척추가 접히는 부류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가 슈퍼에서 돈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주변인들은 모두 놀라..진 않고 짜증냈다. 계속 뜯어먹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을 비굴하게 보낸 후, 그는 구상을 실행에 옮긴다.
비장하게 문방구 앞에 선 정씨, 미리 바꿔둔 수십개의 백원짜리 동전을 차례로 뽑기통에 처넣고 돌린다.
돌린다.
돈이 떨어질때까지 돌린다.
계속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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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부터 동네에서 그는 크리링이라 불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