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에키 » 2004-05-26 Wed 12:30pm
그러니까..아마 초등학교 5-6학년 때 였을 걸로 기억한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부산 사하구 장림이라고 공단이 생기면서
그나마 좀 나아진 동네인데, 시장 통을 기점으로 오락실이 분포 되어있었다.
물론 그 때야 오락실에 가면 부모님께 맞았지만, 그런다고 안 갈쏘냐.
아무튼 언제나 오락실에 가면 KOF나 사무라이 쇼다운, D&D 등이
인기 만빵이던 저희 동네에 신개념 성인 게임이 들어왔다.
(아마도 처음 접한 성인 게임이 이게 아닐까 생각된다.)
Gals Panic S....그것도 Extra Edition(으로 추정)..
뭐 80%면 그냥 클리어지만 90% 클리어부터 야릇한 보상이,.
100% 클리어시에는 이것이 어른들의 세계구나...라는 망상도 가능했던 희대의 게임.
처음에는 오락실 주인 아저씨나 아르바이트 생들도 학생들은 못하게
막았지만, 주 고객이 학생들인만큼 막는 게 가능할리 없다.
보통 1인용 게임은 누가 하다 끝나면 컨티뉴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게임 너무 컨티뉴율이 높았다. 심지어 옆 동네에서
놀러온 애들도 100원 씩 넣고 눈에 불을 켜더라.
그러던 어느 날.
시험이 끝난 일요일, 친구들과 매립지에서 놀다가 오락실이나 가자-라고 해서
들렀더니 오락실이 좀 조용했다. 자기 오락을 해야 할 사람도 어느 곳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곳은...Gals Panic이 있던 자리.
조막만한 놈들이 구경 좀 해볼꺼라고 비집고 들어갔다.
"아저씨 이거 지금 몇 판이에요?"
"끝판까지 4판 남았다."
대답하는 아저씨의 눈에는 알지못할 열기가 서렸다.
우리도 오락기 옆에 앉아서 구경했다. 플레이를 하는 형의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갈수록 올라가는 난이도 덕택에 형은 죽었다.
아쉬운 숨을 내뱉으며 일어나려던 그 때, 누가 그 형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짤그랑.
"계속 해라."
형과 그 사람은 눈빛을 잠시 주고 받았다. 그리고 형은 다시 앉아서
지도를 그려나갔다. 꿈과 희망, 열정과 즐거움이 존재하는 세계를 향해.
그 뒤로도 숱하게 죽었지만, 형이 일어날 때면 누가 꼭 컨티뉴할 자금을 댔고
형은 계속해서 지도를 그렸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도 100원씩 보탰다.
그리고 마지막 스테이지를 깨었을 때.
오락기 주위를 감싸던 형들, 아저씨들(=도합 변태들)의 즐거운 함성.
덩달아 우리도 기분 좋다고 와아 거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승리를 거머쥔 형도 뿌듯한 웃음을 지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뒤에서 구경하던 오락실 주인 아저씨도 흐뭇이 웃고 있었을 것이다.
(돈 많이 박았으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열정과 즐거움, 희망의 Show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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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한 일주일 간 그 오락은 왕년의 스트리트 파이터 못지 않게 인기 만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