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 짧은 후기
(딴 데다 짧게 후기 쓰고 여기다간 좀 길게 쓰려고 했는데, 간단히 쓴 거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가 버려서 그냥 그걸 여기다 옮김.)
33 원정대 이 게임은 예술성을 보거나 경험할 수 있는 요소에 아주 많이 신경을 썼다. 음악과 배경 아트가 아주 좋고, 무기, 의상 등 인게임 디자인들이 전반적으로 유럽 전성기 시절의 컨셉을 잘 냈고, 판타지 아트나 연출에도 돈을 많이 쓴 것으로 보이고 잘 만들었다.
스토리는 중간에 방향을 많이 바꾼 건지 왔다 갔다 하면서 난해한 내용들이 있는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세계 전체를 소설처럼 줄줄 설명할 필요가 없도록 가장 중요한 갈등을 선명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놔서 이해가 잘 되게 만들어 놨다.
게임 UI는 앤틱하게 만들어 놓긴 했는데 내가 봤을 땐 좀 많이 안 좋다.
파티 메뉴를 처음 열어 봤을 때 하이라이트가 어디에 되어 있는지를 몰라서 당황하기도 했고, 루미나 목록을 두 줄로 표시되도록 만든 건... 어쩌다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웃겼다.
전투는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인데,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땐 마음에 들었는데 게임을 끝까지 하고 엔딩까지 보고 난 지금은 고통스러웠던 경험들만 기억난다.
이 게임은 턴제 RPG에서 턴이 진행되는 동안 점수를 더하거나 빼앗거나 뺏기거나 하는 프레스턴의 특징도 갖고 있고, 적의 턴이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적의 공격을 받아치거나 회피할 수 있다.
그런데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이걸 턴제 RPG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이걸 그냥 소울라이크 게임을 턴제로 하는 것과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게임 초반에는 네브론(몬스터)들의 패턴을 외워 가며 피하고 막고 하면서 꽤 재밌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턴제 RPG 게임에서는 전투가 시작되면 보스와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이 다 기본 자세에 들어가고 카메라도 기본 위치로 가면서 익숙한 UX를 통해 정보를 파악하는 프로세스가 있는데, 이 게임은 2막 중반을 넘어가면 전투가 시작되고 화면이 바뀌자마자 내게 첫 턴이 돌아오기도 전에 점프해서 엇박자 패턴으로 덮치는 적들이 나온다. 난 한 대 맞으면 죽는데 그딴 짓을 한다...
게임 후반에 데미지 9999 제한이 풀리기 전에 어쩌다 어려운 보스와 만나서 전투를 하는 동안 횟수로 세면 세 자리 수가 넘어갈 정도로 회피나 카운터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냥 일반 몬스터라도 공략이 끝난 녀석들은 자동 회피로 처리해 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게임이 턴제 RPG의 미래라고 극찬했던 분들은 내 생각에는 그냥 턴제 RPG가 싫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잘 만든 변종인건 맞지만, 제발 다른 RPG 게임들이 이 게임을 흉내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RPG를 하면서 고통받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