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술로 새롭게 만든 FF7>
FF7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가장 기대한 건 그래픽, 영상, 성우 연기 등이었을텐데 이런건 그런대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웬만한 대화 장면은 PS5의 성능을 활용한 실시간 렌더링으로 제작되었고, 등장인물들의 표정 변화와 연출이 뛰어나다. 챕터 사이의 중요한 장면은 영상으로 처리되긴 했지만, 실시간 렌더링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고해상도로 만들어져 있다. NPC들의 립싱크도 전작에 비해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성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그 옛날 FF7 원작에서 클라우드가 "히히... 돌려줘..."라고 할 때는 글자만 보고 ‘아이고, 이 녀석 참 많이 망가졌네’ 하며 넘겼는데, 세월이 흘러 FF7: REBIRTH에서 성우의 음성으로 그 대사를 들어보니 소름이 끼치고 실감이 났다. 기술의 발전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전투>
전투는 이 게임에서 가장 잘 만든 요소라고 생각한다. 이동과 기본 공격은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있고, 커맨드 창을 열면 게임이 일시정지되기 때문에 적의 타입이나 속성을 확인하고, 공격 순서를 조정하거나 다른 멤버로 조작을 바꾸고 연계기를 판단하는 등의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앞으로도 스퀘어는 실시간과 턴제 ATB 시스템을 이런 방식으로 결합해 계속 다듬어 갈 것 같다.
전작에 비해 특히 좋아진 것 중 하나는 전투 중의 카메라 연출이다. 거대하거나 날아다니는 몬스터도 그런대로 잘 보여준다. 스토리상 중요한 인물과의 보스 전투는 그 캐릭터에 맞춘 전용 연출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이 꽤 멋지다. 전투 자체도 재미있고, 구경거리로도 훌륭한 편이다. FF7 원작에서 폴리곤 허수아비 같았던 루퍼스 신라가 이번 전투에서 멋있게 재탄생한 것이 내 마음에 들었다.
<넓어진 월드, 탐색과 미니게임>
최신 기술과 뛰어난 그래픽으로 FF7 원작의 세계를 넓고 예쁘게 만들어놨다. 원작에서는 마을 밖으로 나가면 단순한 월드맵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마을 안팎이 밀도 높게 구현되어 있다. 마을의 풍경과 주민들의 모습, 그리고 의뢰를 수행하며 월드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면 FF7의 세계를 실제로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월드를 잘 만들어 놓았지만, 그 탐색과 보상의 방식은 너무 뻔하고 게임하는 사람을 꽤나 지치게 만든다. 각 지역에는 ‘월드 레포트’라는 도전과제가 있어서 비경 탐색, 소환수 찾기, 토벌 의뢰, 초코보 포획, 통신탑 복구, 보물 찾기 등을 할것을 제안하고 있다. ‘제안’이라고는 하지만, 이 탐사 의뢰에서 얻는 탐사 점수로 전투에 유용한 마테리아를 획득할 수 있어서 사실상 필수가 된다. '월드 레포트'에서 제시하는 탐사의 흐름을 따라가면 처음에는 탐색 같아 보이지만, 정작 각 시설을 작동시키는 부분은 미니게임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이 미니게임이 지역마다 거의 똑같다는 점이다. 각 지역에서 제시되는 비경, 소환수, 토벌, 초코보 등 항목들은 반복되며, 지역이 바뀌어도 기믹이 그대로이거나 비슷하다. 이 게임에는 10개 정도의 애리어가 있다. 각 애리어마다 비경찾기, 소환수 찾기, 토벌의뢰, 그리고 그... 에휴... 하여튼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우리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 타고 시소 타고 정글짐에서 놀다가 옆 동네 놀이터에 가서 똑같이 그네 타고 시소 타고 정글짐에서 노는 일을 열 번쯤 반복하게 된다.
초반 그래스랜드 지역이나 주논 지역에서는 꾸준히 성장하며 월드 레포트를 완성해 가는 만족감이 있다. 하지만 곤가가 지역쯤 오면, 내가 돈 주고 산 게임에게 갑질당하는 느낌마저 든다. 다양해 보이지만 실상은 얄팍하고 반복적인 구조가 문제다. 게다가 미니게임은 ‘월드 레포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의 지형이나 설정상의 문화적 특성을 살린 미니게임, 마을마다 존재하는 피아노 리듬 게임, 카드 게임, 심지어 사소한 의뢰조차도 미니게임을 끼워 넣었다. 어느 NPC가 요리용 버섯을 모아달라길래 그냥 버섯이 있는 위치에 가서 버튼 누르면 버섯 아이템이 입수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버섯 따기’ 미니게임 UI가 튀어나와 소리를 지를 뻔했다. ‘월드 레포트’를 아예 무시하고 거기에 딸린 미니게임도 안 했더라면, 다른 미니게임들은 그럭저럭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상 강제되는 반복 콘텐츠와 얄팍한 콘텐츠 다양성은 꽤 피로감을 준다.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 그대로>
FF7: REBIRTH의 스토리는 FF7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바뀐 부분도 있지만 크게 다르거나 새로 추가된 내용은 없다. 월드가 넓어지고 콘텐츠의 밀도가 높아졌으니 스토리 분량도 늘었을 거라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그렇지 않다. 세피로스는 여전히 주인공 일행이 가는 곳마다 나타나 한마디씩 던지고 사라지는 관광 가이드 노릇을 하고 있으며(이건 해보면 이해될 것이다), 클라우드 일행이 겪는 사건들도 몇몇 변주와 선택지는 있지만 결국 원작의 줄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FF7: REMAKE에서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암시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많은 요소들을 좋게 개선했지만, 스토리만큼은 그 수준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골드소서에서 동료와의 데이트 이벤트는 좀 더 다양한 대사와 연출로 흐뭇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고, 그 부분은 만족스러웠다. 그 외에는 대부분 유저들이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진행된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도 산 게 아니고... 그렇게 흘러간다.
<마무리>
전체적으로 보면, 이 게임은 '새로 만든 FF7'이라는 타이틀에 간신히 걸칠 수 있는 수준이다. 게임을 이 정도로 만드는 것도 꽤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3부작 중 이번이 두 번째임을 생각해보면 몇 년 후 나올 최종장에서 이 이야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것 같지 않다. 그래도 전투는 만족스러웠고, 토벌 의뢰와 카드 게임 ‘퀸즈블러드’는 재미있었으며, 에어리스와 티파는 여전히 예뻤다. 그냥 이정도의 게임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