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5가 생각나는 특징들>
이 게임을 하면서 파판15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15에서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알겠는데 이것밖에 안 되는 게 너무 아쉽다.' 했던 것들을 잘 손질해서 16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전투방식인데, 15의 전투에서 라이브라를 빼고 템포가 계속 변하게 한 다음 다양한 연출과 판정, 각종 보정을 더하면 16의 전투가 된다. 15의 전투가 프로레슬러들이 사전에 연습할 때 합 맞춰보듯이 느릿느릿 다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게 불만이었는데, 16에서는 타이밍 맞춰서 느려지거나 빨라지거나 해서 화려하고 호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화려한 액션 연출 대비 실제 조작은 매우 간단하다. 전투할 때 적의 공격을 막을지, 피할지, 받아칠지, 스킬을 사용할지만 판단해서 단순한 몇 가지 조작만 하면 화면에서는 굉장히 화려한 모습들을 알아서 보여준다. 아무래도 스퀘어는 앞으로도 파이널판타지의 전투를 이렇게 만들 생각인것 같다.
그 외 퀘스트 트래킹, 마크에 사용되는 UX의 룩앤필 등이 전반적으로 15나 7에서 가져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재사용 및 안정화를 해놓은 부분들도 많다.
<단점도 있다>
단순한 조작으로 화려하고 박력 있는 액션을 보여주는 것은 좋은데, 이 방식이 단순 반복조작이 되는걸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스킬 세트(소환수 스타일)를 세종류만 설정할 수 있도록 한 건 좀 이상하다. 다른 소환수 스타일에서 스킬을 한 개 정도 가져와서 설정할 수는 있지만, 기본기를 제외하면 장착할 수 있는 스킬이 한 스타일당 2개씩 6개밖에 안 된다. 저지먼트 시리즈의 기무라 타쿠야처럼 많은 스타일을 장착해 전투에서 계속 바꿔쓰면서 좀 더 다양한 콤보를 쓸수 있어야 할 거 같은데,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이해한 FF16 전투의 기본컨셉과는 맞지 않는 제한인 것 같다.
게임 다이얼로그 화면의 문제도 있다. 이 게임을 영어로 해보면 대사의 깊이와 밀도에 감탄하게 된다. 영어판 음성의 대사가 생각보다 길고 많다. 잘 알아듣는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립싱크도 영어판을 기준으로 한 것 같은데... 자막은 일본어를 번역한 한글 자막이 나온다. 효율에 떠내려 보낼 것을 잘못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어를 번역한 자막은 파판 시리즈를 쭉 해온 사람들의 사전지식과 맥락에 의존한 듯 대사가 매우 간결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음성을 영어로 맞추고 해보면 어느 NPC는 '49일 밤낮으로 열심히 도망 다닌 어떤 비공정의 이야기'를 하지만 자막은 그냥 '도망 다닌 비공정'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자막에서 뭉개버린 영어음성의 감정표현이나 뉘앙스가 너무 많다.
페이스 애니메이션도 주연급 캐릭터들을 제외하면 NPC은 시선 처리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게 많다.
'질'은 주연급 등장인물이지만 게임 전반부 대비 후반부에서의 취급이 좋지않다. 초반에는 땀내 나는 남자들 사이에서 혼자 '너희들이 나에게 걱정하는 것들은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라고 말하는 듯 왠지 생각과 행동이 다 준비되어 있어서 성장하는 외유내강형 캐릭터 이미지를 굳혀가지만 게임 중반의 어느 사건 이후 후반에는 존재감이 완전히 서브퀘스트의 NPC와 같아져서 시대변화에 맞춰 균형을 잘 맞춰놓은 인물상이 너무 아깝다. 주인공 클라이브도 마지막 전투에 개는 데리고 가면서 질은 뇌두고 간다... '최종장에서 뭔가 활약이 있었던 거 같은데 완성본에서는 빠진 걸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이만하면 파판이라고 해도 된다>
소환수를 게임 첫 장면부터 간단한 버튼 몇 개로 직접 조종할 수 있으며 소환수끼리 데미지 수십만을 띄우면서 개싸움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옛날 오락실에서 공룡 철권 하는 느낌이라 굉장히 재미있었다.
FF16은 이렇게 시작부터 이전 시리즈와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거기 나오는 게 게이머들에게 익숙한 소환수들이고 언젠가 본 적 있는 크리스탈이라면 그건 파판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이제 파판은 옛날의 시리즈들과 비교하면 너무 많이 바뀌었는데 그래도 파판의 단골 설정들이 나와주는 데다가 게임이 중요한 부분에서는 언제나 '파이널판타지'로 돌아오게 만들어져 있으므로 이만하면 파판이라고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잘 됐다.